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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의 무림통신/박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주짓수는 어떻게 세계 최강의 무술이 되었나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 vs 타무도]

[연재를 시작하며] 전 세계에는 많은 종류의 무술이 있다. 태권도는 그 다양한 무술 가운데 하나다. 팔과 다리를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전제를 놓고 본다면, 이 다양한 무술들은 모두 일맥상통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태권도나 복싱과 같이 상대방을 가격하는 무술이건 유도나 레슬링과 같이 상대를 잡아 꺾거나 넘기는 무술이건 인간과 인간이 맞서 상대를 제압한다는 목적은 모두 같다. 그런 점에서 태권도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무술들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태권도인들 중에 타 무술에 무관심한 경우를 보게 된다. 태권도가 최고이기 때문에 태권도만 잘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동서고금의 무술 고수들 중에는 한 가지 무술만 잘 한 경우보다 자신의 무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여러 무술을 두루 섭렵한 경우가 더 많았다. 태권도신문은 태권도인들의 타 무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기대하며 신년 기획의 하나로  '태권도 vs. 타 무술' 연재를 시작한다.

= 제1편 주짓수 =



무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미국의 종합격투기대회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무술들 중에서 어떤 것이 최강인가를 실제 대결을 통해 가려보자는 시도에서 탄생됐다. 그런 의미에서 1993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시작된 제1회 UFC대회는 무술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기억되고 있다.

유도, 가라테, 킥복싱, 레슬링 등 각 무술의 내로라하는 고수가 총출동한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무술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주짓수(Jiujitsu)였다. 주짓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무술을 내세운 브라질 출신의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가 1회, 2회 대회에 이어 4회 대회까지 거푸 우승을 차지했다. 호이스는 출전자들 중에서 키나 몸무게가 큰 편도 아니었고 오히려 가장 약해 보인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선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상대 선수들은 호이스와 맞붙기만 하면 꼼짝을 못했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승자 호이스가 자신의 형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공언했다. 바로 공식, 비공식전을 합쳐 450전 무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힉슨 그레이시(Ricson Gracie)다. 힉슨 그레이시 또한 브라질을 넘어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실력을 증명했고, 이후 전 세계 무림계에는 이 새로운 무술 주짓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주짓수(Jiujitsu)는 일본무술인 유술(柔術)의 영문표기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주즈츠(Jujutsu)’에 더 가깝지만 브라질을 거쳐 미국에서 알려지면서 주짓수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주짓수는 일본의 유술이 브라질에 들어와 그레이시 가문을 통해 발전하고 정립된 새로운 무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본의 유술을 브라질에 전해준 인물이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 1878~1941, 일명 콘데 코마)다. 마에다는 원래 유도의 창시자인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의 제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가노 지고로는 일본의 수많은 유술 유파 중에서 위험하거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기술은 버리고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은 더욱 강조하여 새로운 무술인 유도를 만들어 냈다.

가노는 자신의 무술인 유도를 만들어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유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수제자들을 다른 유술 유파의 고수에게 보내서 배우게 했으며, 유도의 극의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고류유술을 연구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자주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도와 유술의 전통을 몸에 지니고 있던 마에다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레슬링, 복싱 등의 타 무술 고수들과 ‘이종격투’ 시합을 하고 다녔다. 마에다의 이러한 행보는 가노 지고로의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마에다는 유도라는 이름 대신에 유술이라는 이름을 썼다.

마에다는 1914년 브라질로 건너가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집안(그레이시 가문)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고마움의 표시로 이 집안의 아들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준다. 이것이 바로 ‘브라질 유술’, 또는 ‘그레이시 유술’이라고도 불리는 주짓수의 시작이다.

마에다에게 유술을 배운 그레이시 가문의 아들들(그 대표라 할 만한 사람으로 주짓수의 시조라 불리는 엘리오 그레이시가 있다)은 스승인 마에다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질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거친 분위기 속에서 타 무술들과의 끊임없는 대결을 통해 자신들의 무술을 더욱 실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질에 유술이 소개된 지 만 80년 만에 세계 최강의 무술에 가장 근접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90년대 후반부터 주짓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재는 주짓수를 배우지 않고 종합격투기에 나서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필수 요소가 되었다. 그 파해법도 많이 개발되어 예전과 같은 불패의 무술이라는 명성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짓수의 성가는 유효하다.

주짓수가 가진 매력의 하나는 10년을 꾸준히 수련해도 따기 힘들다는 주짓수 블랙밸트의 가치다. 길어야 1년, 심한 경우에는 몇 주간의 단기연수만으로도 검은띠를 받을 수 있는 무술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주짓수 검은띠의 가치는 여전히 대단한 것이다. 심지어는 주짓수 갈색띠가 웬만한 무술 3~4단보다도 더 권위를 갖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로 실력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매고 있는 띠와 단위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터. 주짓수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몸을 맞대고 수련을 하기 때문에 말로만 가르칠 수가 없는 무술이다. 다시 말해 직접 몸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가르칠 수가 없는 것이다. 태권도의 경우는 어떠한가? 타 무술을 통해 보다 더 연구하고 배울 필요를 여기서 다시 한 번 찾을 수 있다. (끝)


[박성진 기자의 무림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