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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의 무림통신/박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태권도가 '유도'로부터 배워야 할 점들

[박성진 기자의 태권도와 타무도] 제9편 유도  
 
                         Sports News - February 15, 2009

유도(柔道)는 여러 가지 면에서 태권도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무술이다.

태권도의 경우 올림픽 잔류 여부를 걱정하고 있지만, 유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태권도보다 36년이나 빠른 1964년에 이미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동양을 대표하는 무술스포츠로서 전 세계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유도에 대한 관심은 높다. 실례로 태권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국내 선수들에 대한 일반 미디어의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유도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적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태권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잡은 사람으로는 문대성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유도의 경우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스타로 자리잡은 최민호, 왕기춘을 포함해 이원희, 추성훈 등이 CF모델로 활동할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 모두가 유도가 국제스포츠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제스포츠로서의 유도는 국제유도연맹(IJF)이 이끌고 있다. IJF의 위상도 확고하다. 박용성 현 대한체육회장이 IJF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일본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의 마리우스 비제르 회장이 IJF를 이끌고 있다. 

유도는 국제스포츠로서의 위상도 확실하지만, 무도(武道)로서의 위상도 그에 못지않게 확고하다. 유도의 본산 고도칸(講道館)이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의 국기원이 바로 이 고도칸을 본보기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태권도의 기술발전 및 연구, 지도자 배출, 수련의 3가지가 주요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도장으로서의 국기원이 현재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단증 공장’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도칸에 있는 유도 창시자 가노 지고로의 동상.

그러나 고도칸의 경우, 이런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부적으로는 문제되는 부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유도의 성지(聖地)로서 고도칸이 가지고 있는 위상에는 흔들림이 없다. 가장 큰 이유로는 유도의 창시자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힘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유도는 사무라이들의 무술인 유술(柔術)을 모태로 해서 만들어졌다.
 
가노 지고로는 천신진양류(天神眞楊流), 기도류(起倒流) 등 몇 가지 주요 유술 유파들에서 위험하거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술은 빼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술들은 강조해 오늘날의 유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과거의 ‘무술(武術)’을 ‘무도(武道)’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이를 가르치는 곳[講道]으로 강도관을 설립했다. 이후 ‘도’라는 이름이 들어간 무술들(태권도, 검도, 공수도, 합기도 등)은 모두 유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가노 지고로는 ‘유도’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근대스포츠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꼽힌다.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가노는 1909년부터 30년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텡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가 되었다. 

이렇듯 근대 동양무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바로 가노 지고로다. 지금도 강도관의 정문 입구에는 가노 지고로의 동상이 서 있다. 가노 지고로는 말하자면, 김운용과 최홍희가 한 역할을 혼자서 해낸 인물인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유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모든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은 누가 있을까?

[by 박성진의 무림통신 - 태권도와 타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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