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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칼럼-태권도 산책

[진단] 추락한 태권도 종주국… 지금 필요한 것은 ‘Reset’

국제 흐름에 맞춘 선수 육성 및 발굴 必… 지금부터 4년간 준비해야

 

 

최근 몇 년간 국제대회에 출전한 한국 태권도 성적은 좋지 않았다. 대회가 끝날 때마다 ‘종주국의 수모’, ‘추락하는 종주국’ 등 자극적인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부활의 날갯짓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둬 침통한 분위기다.

 

한국 태권도 대표팀은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영국 런던 엑셀 아레나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태권도경기에 남녀 4체급에 출전해 황경선(고양시청, 26)의 금메달과 이대훈(용인대, 20)의 은메달을 획득했다. 결과로서는 역대 4회 올림픽 출전사상 최악의 성적이다. 스페인과 중국에 이어 터키와 종합 3위를 기록했다.

 

11일 기대를 모았던 차동민(한국가스공사, 26)과 이인종(삼성에스원, 30)이 마지막 날 동반 금메달에 나섰지만, 8강에서 잇달아 충격적으로 패했다. 이인종은 8강 상대였던 캐롤라인 그라페(프랑스)가 결승에 진출해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연장전 접전 끝에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경기를 마친 후 대표팀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마지막 밤을 보냈다. 대한태권도협회 양진방 사무총장과 대표팀 김세혁 총감독 등은 이번 올림픽 결과에 승복하면서 책임을 통감했다.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세계 태권도 흐름을 읽지 못하고 준비한 것이 패인의 결정적 요인으로 모두가 공감했다.

 

김세혁 감독은 “우선 역대 최악의 성적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코치진과 선수들이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역부족이었다”며 “종주국이 독주하던 시대는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확실히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됐다. 새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가 왔다”고 참담한 심정으로 견해를 밝혔다.

 

한국 태권도가 올림픽 무대에서 출전 체급에서 메달 없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올림픽을 앞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심지어 ‘노골드’까지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왜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할까.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국제적 흐름에 맞추지 못한 결과다. 4년 전 올림픽과 비교해도 경기규칙과 방식이 확연하게 바뀌었는데 아직도 한국은 옛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자호구 도입에 따른 준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 없이 부족했다. 다른 나라는 올림픽 전자호구가 대도(Daedo)로 결정되자 곧바로 그에 맞는 적응훈련에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유효득점으로 인정되는지 연구와 훈련을 거듭했다.

 

실제 이번 사용된 전자호구의 제조국인 스페인은 올림픽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3체급 전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금1, 은2개로 출전국 가운데 종합1위를 거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역시 오래 전부터 전자호구 도입에 대비한 훈련을 철저히 했다.

 

새로 바뀐 경기 룰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머리 득점이 ‘정확한 가격’에서 ‘터치’로 바뀌었는데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외국 선수단은 머리 공격을 대비해 앞발로 저지한 후 다음 공격을 하는 전술로 대처했다. 1차 공격에 이어 연결 기술이 없었던 것도 추가득점에 실패한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전술적인 면에도 졌다. 기술에 있어서는 아직 세계 최강이지만, 그 기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새로워진 경기 룰은 다양한 연결 발차기 속에서 점수를 얻는다면, 한국 태권도는 아직도 ‘원 포인트’ 전략으로 하고 있다.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여 재기량을 충분히 발휘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이기기 위한 경기에 너무 집착한 것이 문제다. 새로운 룰은 점수 지키기가 불가능하다. 한순간에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경기는 단호하게 경고와 감점이 부여되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승리를 장담 못한다.

 

선수와 지도진의 마인드도 개선에 여지가 필요하다. 예선을 뛰면서 결승을 고민하고 있다. 한 경기가 모두 고비라고 생각하고 그 경기에 몰입해야 하는데, 뛸 수 있을지 모를 결승에 대비하는 것은 자만을 불러온다.

 

상대 선수들의 대한 정보력 미흡 역시 패인 중 하나다. 한국 태권도는 여자 +67kg급 이인종의 상대로 프랑스의 글라디 에팡에 몰두했다. 그런데 대회를 앞두고 선수가 교체됐다. 이미 세계선수권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임에도 철저한 사전 분석이 부족해 8강에서 발목을 잡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올림픽은 이미 막을 내렸다. 이제 4년 후 올림픽을 준비해야 할 때다. 전제조건은 대한태권도협회를 비롯한 지도자, 선수 등 모두의 기존 태권도 경기에 대한 개념을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현재 흐름을 맞춰야 한다. 창조적인 경기 운영이 필요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대표팀은 상시 운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선발전도 국․내외 여러 대회에 출전해 얻은 결과를 점수로 합산해 올림픽 1년 전에 선수를 확정지어야 한다. 지금처럼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선발전을 마친 후 4~5개월 훈련해서 금메달을 따는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 지도자, 심판, 집행부 모두의 국제경험을 쌓아야 한다. 각 분야의 구성원들이 현재의 위기 상황을 함께 인식하지 못하면 안 된다. 유도의 종주국 일본이 몰락한 이유는 과거만 생각하고, 현재의 시스템에 적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유도가 세계 정상을 지켜온 이유는 끊임없는 노력과 투자를 해서 가능했다.

 

대표팀은 매년 4~5회 이상 세계 각국에서 개최되는 메이저급 오픈대회에 출전해 국제흐름의 이해와 경기경험을 쌓아야 한다. 아울러 이제 국제대회에 중요변수로 또 오른 랭킹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대표팀 이외 일반팀도 출전을 장려해 자연스럽게 국내대회도 국제적인 흐름으로 발바꿈 시켜야 한다.

 

심판도 마찬가지. 국제 경기규칙과 판정의 기준에 한국 심판들도 맞춰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대회 경기룰에 적합한 선수가 선발될 수 있다. 현재 한국만이 국제대회에 출장하는 심판에게 지원이 없다. 선수들 이상 국제적인 심판 양성이 불가피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한 황경선 선수도 한국 태권도 경기운영 방식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내대회와 국제대회 경기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심판 판정에 있어 주심의 경고 기준도 한국과 확연히 달라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많은 개선점이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더욱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심하게 얻어 터졌으니 정신을 차리고, 총제적인 변화만이 살 길이라고 느꼈을 것이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 보다 훨씬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돈이 없어 못한다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또 한 번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메달 텃밭인 양궁과 유도가 기술 평준화와 거센 도전 속에서도 세계무대의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쉬지 않은 대표팀 상시운영 체제와 오픈대회 출전, 우수선수 양성 시스템으로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자만으로 가열된 종주국 태권도 여기서 '리셋(Reset)'하고 완전해 새로 태어나야 할 때다.

[by. 무카스미디어 = 한혜진 기자 ㅣ 태마시스 운영자 ㅣ haeny@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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