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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니의 세상살이/이집트 생활기

서산대사 한시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다!

[해니의 나일강 산책 - 생활일기]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나의 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지니


 - 서산대사


백범 김구 선생 친필

내 책상머리 위에는 서산대사가 지은 한시가 붙여 있다. 이 시는 요즘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개인적으로 남들이 하지 않은 일,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편이다. 쉬운 길, 편한 일을 찾으면 심신이 편할 텐데 말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편하고,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난 늘 그래왔다. 가진 것 없어도 늘 자신감하나로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헤쳐 나왔다. 그래서 난 누구보다 내 자신을 믿는다. 그런데 요즘 그 자신감이 많이 수그러진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전에도 그렇듯 누구에게 도움 받아야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혼자 인내해야 할 일이다.

오늘 저녁 현지인 친구가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지친 내 목소리를 듣더니,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지친 것 같다며 몸보신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일을 마치고 그와 만났다. 그가 지친 날 위해 아주 비싼 저녁밥(실제로 그의 아내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사줬다. 그의 따뜻한 마음에 기운이 나길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아스완에 처음 내려올 때와 지금은 많은 부분 변했다. 유일한 동양인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태권도도 모르는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알리고 가르쳤다. 불모지에 태권도를 활성화 시켰다. 맨땅에서 운동하는 수련생들의 열정에 반해 태권도장을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게 꿈같은 이야기 이었다. 그런데 그 꿈들이 현실이 되었다.

마지막 완성을 앞두고 내가 지쳐 있다는 게 한심스럽다. 포기할 자신감도 없다. 그래서 오늘 밤 과중한 부담감을 벗어 던졌다. 편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속이 다 시원하다.

시가 말하듯 훗날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올 누군가에게 든든한 이정표를 주기위해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지친 내 심신은 조금 전 끝이 났다. 이 시간 이후부터 백만불짜리 미소와 자신감으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려고 한다.


2010.02.11(목)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