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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운동선수 폭력문화,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

- 작성일 : 2008. 11. 20.

[한혜진의 태권도 산책] - 폭력문화를 당연시 하는 체육계 인식전환 시급
                            - 체육회, 교육청 등 관리 단체의 제도개선 의지 강화

한동안 잠잠하던 체육계 폭력사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중고교 운동선수들의 상습 폭력 사례 및 인권에 관한 설문조사를 발표한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가히 충격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래서 체육계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이어지고 있다. 체육계 만연된 고질적인 폭력문화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누구를 탓해서는 장기간 걸쳐온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권위의 조사 발표로 사회적으로도 운동선수들의 폭력사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자, 정치권도 발 빠르게 정부당국에 제도개선을 위한 종합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회는 중고교 운동선수들의 관리에 직접 관여된 대한체육회와 시도교육청에 학생 운동선수들의 폭력 및 성폭력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해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에는 인권과 학습권 보호를 위한 종합대책을 요구했다.

체육계 폭력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명실 공히 세계 10대 스포츠 강국이다. 지도자와 선수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정신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목하게 체벌이 있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선후배간 위계질서 확립이라는 듣기 좋은 이유를 내세우며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가혹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선수들에게 인권은 안중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선수들의 폭력사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은 가끔 뉴스에서 피해사례가 크게 보도될 때 뿐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제도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 하에 지도관리가 이뤄졌다면 이보다 심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필자가 선수들의 폭력사태를 접할 때마다 발끈하는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태권도 선수생활을 했다. 특히 중고교 시절에는 지도자에게는 물론이고, 선배들에게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해야만 했다. 피고름이 나올 정도로 심하게 두들겨 맞아도 감히 부모에게 말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를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당시 운동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 역시 자녀가 심한 폭력을 당해도 별다른 조치 없이 조용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수들의 폭력사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지도자와 선수들의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이해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체벌이 모두 없애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체벌과 별개로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성적 폭력 근절을 말한다.

우리나라 운동세계는 전통적으로 ‘지도자<->선수’, ‘선수<->선수(선후배, 동료)’ 등 관계는 지나치게 수직적이다. 약자(선수, 후배)는 늘 강자(지도자, 선배)에게 말조차도 쉽게 할 수 없는 ‘하늘과 땅’ 같은 관계가 계속되어왔다. 운동할 때 이런 말이 있었다. “선배는 하나님과 동기동창이다”, “선배의 가래침은 로열 젤리다”, “동그라미를 선배가 세모라고 하면 세모다” 지금생각하면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다.

사회 전반적으로 폭력을 금기하는 분위기와 달리 체육계는 여전이 음성적으로 폭력이 진행되고 있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끝내 문제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년전 대한체육회가 선수폭력 근절을 위해 선수보호위원회를 만들어 운영되어 왔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폭력을 행사한 지도자나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고 징계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중장기 관점에서 현재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사항은 지도자, 학부모, 선수들의 폭력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다. 이를 위해 체육회와 시도교육청, 학교 등이 앞장서 지속적인 폭력문화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을 전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국인 감독이 본 우리나라의 딱딱한 체육계 단면을 살펴보자. 한국 축구 신화를 기록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히딩크 감독은 사령탑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아 선수들의 위계를 완벽하게 허물어버렸다. 팀워크가 중시되어야 할 단체경기에 선후배 사이가 너무 경직돼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다는 결론을 낸 후 내린 극약처방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식사는 원탁에서 훈련시간에는 후배들도 선배들에게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 어색한 기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효력을 발휘했다. 경기 중에 선수들은 말을 많이 하게 됐다. 당연히 서로를 보완하는 순기능을 가져왔다. 열 살 차이가 넘는 어려운 선후배 관계에서 친구 같은 관계가 됐다. 대표팀은 환상의 팀워크를 만들었고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기록하게 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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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ㅣ www.ilovetk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