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칼럼-태권도 산책

한국 태권도,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으려면?

[현장수첩] 올림픽 세계선발전 현장에서 본 한국 태권도


여자 -49kg급 입상자들이 순위와 관계 없이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불안했다. 올림픽 본선에 모두 출전할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4체급 모두 출전권을 따냈다. 역대 최다인 109개 참가국 중 4체급을 확정 지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국 태권도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겪은 이후라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종주국 한국의 위상을 되찾은 것은 아니다. 결과는 최고였지만, 경기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냥 웃고 즐길 수만은 없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태권도를 헐뜯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누구보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바랬고, 또 결과에 함께 기뻐했다. 단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 이유는 한국 태권도가 세계무대에서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의 결과로는 모두에게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기더라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승리여야 뛰는 선수도 응원하는 관중도 기쁨이 배가 된다. 혹여 지더라도 후회 없이 뛰어 스스로 결과에 승복하고, 응원하는 사람도 “정말 잘했다”라고 격려할 수 있다.

남자 -68kg급 결승. 거침없는 발차기로 지난 경주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세계 태권도인의 주목을 받은 터키의 타제굴은 예선부터 현지 아제르바이잔 관중을 비롯한 경쟁국 선수단을 매료 시켰다. 그가 출전하는 경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상 경기 시간까지 챙겼다. 그 이유는 그 선수의 화려한 경기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결승전은 이 체급 세계랭킹 1위인 이란의 바게리와 맞붙었다. 2개월 전, 경주 세계선수권에 이어 다시 만난 것이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진검승부가 벌어졌다. 3회전까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시소게임이 계속됐다. 이기는 선수도 끝까지 달려들었다. 결국, 타제굴이 바게리를 꺾고 상승세를 이어갔다.

바게리는 경기에 졌지만, 절대로 낙담하지 않았다. 비록 경기에 패했지만,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승패가 선언된 후에 두 선수는 손을 맞잡고 서로가 승리자라고 격려했다. 관중은 기립박수로 두 선수를 환호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명경기였다.

한국 선수들은 어떠했을까.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선수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매 경기 힘겨웠다. 화려한 발기술도 보기 어려웠다. 전자호구에서 일반호구로 뒤바뀌면서 소극적인 경기운영은 돋보였다. 그러니 이기고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긴 선수도 마음껏 기뻐하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심한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선수의 실력은 정체되었지만, 상대국가 선수들의 실력은 월등하게 성장했다. 평준화를 뛰어넘을 정도다. 한국 선수는 경기를 즐기지 못한다. ‘이기면 본전, 지면 망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좀 더 화려한 경기를 뛰지 그러냐고 하면 “저라고 그러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다 지면 그 욕은 누가 먹으라고요. 결국 한국 태권도 왜 그러나, 종주국 수모다고 하잖아요”라고 답한다. 국제대회 출전하는 선수, 지도자의 마음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집안의 가장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은 이유. 한국 태권도가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늘 부담감을 갖는 이유. 전자와 후자가 처한 입장은 비슷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바뀌었으면 한다. 이제 즐기면서 태권도 경기의 진수를 펼친 경기를 뛰었으면 한다. 가장도 자신만의 인생이 있든, 종주국도 자신 있게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기고 욕먹는 것보다 지더라도 정말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종주국 대표이자 프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분 3회전 내내 종횡무진 경기를 치를 강한 체력과 신체조건이 좋은 외국 선수와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근력강화, 그리고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무대를 미리 상상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문대성의 통쾌한 뒤후려차기 KO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이기고 야유 받고, 고개를 숙이고 나오지는 않았으면 한다. 동메달이라도 환한 미소로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관중석에서 입상자를 향해 축하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라도 그랬으면 한다.

한국 태권도가 다시 재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선수와 지도자의 노력,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가 뒷받침돼야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변화된 종주국의 모습을 기대한다.

한국 태권도 파이팅!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에 있습니다. 따라서 무단전재 및 재배포가 금지 되어 있습니다. >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ㅣ www.taema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