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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의 무림통신/박성진의 무술계 뉴스

[칼럼] 남발되는 국기원 태권도 명예단증에 관하여

얼마 전 방한했던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온두라스 대통령의 태권도 사랑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태권도 공인 3단인 로보 소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명예 9단을 수여받아 모든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문제가 하나 있었다. 로보 소사 대통령에게 태권도 명예 9단을 수여한 주체가 국기원이 아닌 세계태권도연맹이었기 때문이다.

국기원은 이 문제에 대해 세계태권도연맹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항의의 뜻을 밝혔다. 태권도의 단증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국기원이므로 세계태권도연맹이 일종의 월권을 했다는 것이다.

명예 단증이라 하더라도, ‘진짜’ 단증을 발급하는 곳에서 발급해야 한다는 국기원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박사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곳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명예 학위가 됐건 명예 단증이 됐건 실제 학위나 단증에 버금가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 권위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때 세워지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어서는 권위가 세워지기 어렵다.

그러나 국기원이 그 동안 태권도 단(실제 단과 명예 단을 포함하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생각한다면 실망스럽다. 태권도 단의 위상이 추락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다만 최근 국기원이 남발하고 있는 명예 단증에 관해서는 한 마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들어 3월 현재까지 국기원이 발급한 명예 단증은 총 6건이다. 미국 나바호의 전 현직 대통령, 러시아 체첸자치공화국 대통령, 미국 조지아 주지사, 캐나다 총리, 러시아 태권도협회장 등이다. 과거와 비교할 때 적지 않은 숫자다.

명예 단증이 처음 발급된 것은 1981년이다. 그 후 1980년대를 통 틀어 4건, 90년대에는 14건이 있었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동안에는 22건이 있었다. 2010년에는 2건만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3개월 동안에 6건의 명예 단증이 발급된 것이다.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고, 줄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기자는 올해 받은 6명의 인물들이 받을 만한 자격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각 나라에서 유력한 정치인이거나 중요한 인물들이고, 그들과 인연이 되었다고 해서 선심을 쓰듯이 명예 단증을 ‘헌납’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 것이다.

최소한 그들을 직접 만나기는 한 자리에서 명예 단증이 전달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명예 단증을 받은 캐나다 총리나 미국 조지아 주지사 등은 국기원에 와보기는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쪽에 사는 사람들, 그것도 현재의 국기원과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선물로 소포를 보내듯 보내 준 것은 아닌가 말이다.

국기원에서 치러지는 수여식도 마찬가지다. 명예 단증 수여식은 대학의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 만큼이나 엄숙한 절차와 형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나톨리 테레코브 러시아태권도협회장이 강원식 국기원장으로부터 명예 단증을 받고 있다.

위 사진은 최근 국기원에서 열린 아나톨리 테레코브 러시아태권도협회장에 대한 명예 단증 수여식이다.

청바지에 태권도복 상의를 걸친 러시아협회장의 모습에서 태권도 명예 단증 수여식이 갖춰야 할 경건한 분위기를 찾아 볼 수 있는가? 태권도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있는 강원식 원장의 모습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기원은 지난 해에 ‘태권도 예식 규정’을 국기원 연구소의 연구 성과로 발표했다. ‘태권도인이 지켜야 할 예절 지침이자 행동강령’이며 이를 통해 ‘세계태권도본부로서 심사의 절차에 관한 상세 예식을 표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을 2011년부터 실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기자는 이 ‘태권도 예식 규정’이라는 것을 국기원 연구소가 시간과 돈을 들여서까지 연구해야 할 과제인지 의심스럽지만 그 문제는 접어두고, 일단 연구성과를 발표를 했으면 국기원 부터가 심사에서의 예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국기원이 재단법인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된 후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내부를 구조조정해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약속한 지가 벌써 반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과연 달라진 것이 있는가?

그 동안의 국기원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이 없지 않았지만 강원식 국기원장이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기다려달라는 말을 믿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더 기다려도 나올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명예 단증 발급 건은 사소한 일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기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태권도의 단위를 평가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때, 명예 단증 발급 역시 실제 단증 발급에 준하는 중요도를 가지고 행해져야 할 것이다.

이것은 원칙과 위상에 관한 문제다. 이 원칙과 위상을 국기원 스스로부터가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기원이 발행하는 태권도 단의 권위가 추락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by 박성진 태권도조선 기자 kaku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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