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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태권도와 길동무/서성원의 퀘변독설

[서성원의 쾌변독설] 태권도계 '착한 권력'은 없다?

회원들 존중하며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착한 권력’ 왜 없을까?
합법성 내세운 권력독점 득세, 부조리와 권력남용 병리현상 여전  
현행 회장선거, 개방성-상호성-수평성-다원성 등 시대흐름과 엇박자

대한태권도협회 정기대의원총회를 비롯한 시도태권도협회 총회를 앞두고 학창시절 읽었던 소설가 이문열의 대표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생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인과 집단 간의 문제(권력)를 세밀하게 그린 수작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자유당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말, 한병태는 아버지의 좌천으로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에서 작은 읍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 학교에는 급장인 엄석대가 담임 선생님의 비호를 받으며 아이들을 지배했고, 반 아이들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의 말대로 행동한다. 이미 서울 학교에서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장점을 체험한 병태는 엄석대와 싸우지만, 오히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병태는 석대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뿐만 아니라 엄석대의 왕국에서 권력의 단맛을 즐기며 그의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담임이 부임하면서 엄석대의 위치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담임은 엄석대를 눈여겨보다가 시험지를 바꿔치는 현장을 발견하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엄하게 처벌한다. 용기를 얻은 아이들이 엄석대의 비행을 하나씩 늘어놓자 엄석대는 교실을 뛰쳐나가 그날 밤 학교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떠난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친구들 사이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아이를 통해 ‘권력’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불현듯 끄집어 낸 것은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등 태권도 기관과 시도태권도협회, 각 연맹체의 권력을 논하고 싶어서다. 과연 이들 단체의 권력은 합법적이고 정의로울까? 그 내면의 속성과 생리는 어떨까 하는 근원적인 궁금증은 비단 기자만 갖고 있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우선 ‘권력’에 대해 알아보자. 권력의 사전적 의미는 지배자가 피지배자에 대하여 자유ㆍ안전ㆍ 편익 등 생활상의 가치를 배분하는 힘이라고 되어 있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인간이 인간(집단)에 대한 관계를 규제하는 사회적인 힘, 즉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자신의 의지대로 끌고 나가는 힘을 의미한다. 타인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힘이 바로 권력인 셈이다.

현재 태권도 관련 단체들은 대부분 형식적으로 합법적은 과정을 거쳐 집행부를 구성하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합법적인 과정’은 대의원선거라고 하는 간선제를 통한 선거방식을 통해 집권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행법으로 따지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회원들을 대표하는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임기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 선거의 헛점과 권력의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태권도 단체의 회장 선거는 특정 소수의 대의원들만 투표를 하는 간선제이고,  대의원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단독 출마-만장일치 추대’가 하나의 ‘선거 관례’처럼 자리를 잡은 것이다.

또 회장이 바뀌었다고 해도 집권의 연장선상에서 실질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넘버 2’에 의해 회장이 옹립되고, 상임부회장과 전무이사 등이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태권도 대회에서 승부조작을 하지 않고 △승단(품) 심사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며 △회계 처리를 투명하게 하면 장기집권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임기 4년을 마치고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시도협회와 연맹체 등 실권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실세들은 8년, 12년, 16년 철옹성을 구축한 지 오래다. 한번 권력을 잡으면 권력의 단맛에 취해 ‘감방’에 가지 않는 한 스스로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권력에 기웃거리며 감투를 쓰며 줄서기에 익숙해진 대의원들도 집권자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형국이다.

대의원들이 특정인을 회장으로 재추대하는 관행은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추대 형식의 회장 선거는 개방성과 상호성, 수평성, 다원성 등의 시대흐름과 부합하지 않고, 권력독점과 장기집권을 합리화해주는 소지가 농후하다. 대의원 만장일치 추대는 그 자체가 아무리 선의(善意)적이라 하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배제와 통제, 폐쇄와 일방 등이 도사리고 있어 특정인들의 권력독점과 전횡을 방조, 묵인할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근본적인 욕망은 권력”이라고 했다. 물리학에서 만물을 지배하는 것이 에너지라면 사회과학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 앞에서 순진하게 도덕과 정의를 너무 들이대지 말라는 말도 있다. 권력쟁탈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없는 피비린내 나는 상쟁의 역사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음모와 암투, 권모술수와 중상모략 등이 횡행할 수 밖에 없는데, 도덕과 정의의 잣대로 권력을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태권도계의 권력은 왕조시대에 펼쳐졌던 암투와 살육에 의한 권력쟁탈 잔혹사가 아니다. 권력을 놓고 쟁탈을 벌이더라도 독선과 전횡, 장기집권을 하지 않는 ‘착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도덕과 정의를 사사건건 따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편법과 반칙, 권력 남용과 전횡 등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 숨겨져 있다.

헌법 첫머리는 말한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태권도 단체로 마찬가지다. 태권도의 권력은 해당 회원들로부터 나와야 하고, 집행부(집권자)는 회원들을 무서워해야 한다. 견제와 감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도덕과 정의의 울타리 안에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올해엔 순진하게 도덕과 정의를 들이대도 흔쾌히 받아주며 부패와 독선에서 무관한 ‘착한 권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by 태권라인 =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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