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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태권도와 길동무/서성원의 퀘변독설

[칼럼] 태권도 사범은 관장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서성원의 쾌변독설]
 
"사범은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호칭이자 권위와 존경심의 발로"


[장면 1] 2010년 10월 대전에서 열린 9단 고단자회 정례회의에서 한 태권도인이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도장을 개관해 ‘관장(館長)’이라고 하는데, 관장 명칭을 함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와 단(段)을 구분해 어느 기간까지는 도장을 개관했어도 ‘사범(師範)’이라고 해야 한다.”

[장면 2] 대학 졸업 후 시작한 사범생활을 마치고 도장을 개관한 한 젊은이가 자신의 명함에 ‘관장’이라고 썼다. 주위에서 “○사범”이라고 부르자 그는 “사범이 아닌데요. ○관장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장면 1-2]처럼 ‘관장’과 ‘사범’의 개념을 이렇게 인식하는 태권도인들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장이 사범보다 지위가 높다는 수직적인 관계는 체육시설업으로 분류되는 태권도체육관이 들어서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태권도체육관을 경영하는 사람은 관장이고, 그 관장이 고용한 사람은 사범이라고  하는 호칭이 대수롭지 않게 보편화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등 태권도 모체관을 창설한 사람들을 통상적으로 ‘관장’(예 청도관 창설자 이원국 관장)이라고 했지만, 일반 사설학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태권도체육관의 관장하고는 그 의미와 상징이 다르다.

어쨌든 고용인을 ‘관장’, 피고용인을 ‘사범’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계급적인 의미로 통용되다 보니 관장은 사범보다 높다는 상위 개념으로 사용돼 왔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태권도체육관을 개관한 젊은이가 “나는 사범이 아니라 관장”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생뚱맞게 들리지 않을 법도 하다.

하지만 사범이 관장의 하위개념이라고 인식하는 풍토는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형국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태권도체육관 명칭이 크게 작용했다.

태권도가 지니고 있는 무도적 가치와 심신수련의 측면에서 보면 ‘태권도’와 ‘체육관’은 조합이 잘못된 합성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체육관은 올림픽체육관, 장충체육관처럼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을 갖춘 넓은 공간(건물)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태권도를 수련하는 공간을 체육관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아스럽다.

한 태권도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심신을 수련하고 바른 길(정신)을 배우는 수련터가 서양철학으로 인해 슬그머니 체육관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태권도체육관을 ‘태권도장’으로 복원시키면 체육관의 ‘장(長)’이라고 하는 관장 호칭은 자연스럽게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마음과 몸을 닦는 심신수련의 장(場)으로 도장이 기능을 발휘하면 도장의 으뜸 주체인 사범, 즉 남의 스승이 될 만한 모범자들이 새롭게 조명받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5대양 6대주에서 태권도를 보급-지도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한인 관장’이라고 하지 않고 ‘한인 사범’이라고 부른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의민 사범은 “나는 관장이 아니라 사범이다. 사범은 최고의 호칭”이라고 했다.

사범은 관장의 하위개념이 아니다. 사범은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최고의 호칭이자 권위와 존경심의 발로이다. '사범(師範)'은 말 그대로 모범(본보기)을 보이는 스승이다. 도장을 개관하고 나서 “난 더 이상 사범이 아니다. 관장이다”라고 말하는 태권도인들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by 태권라인 =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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