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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원의 태권도와 길동무/서성원의 퀘변독설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비애와 태권도계

"태권도 관련 학과도 이젠 시간강사의
복지후생과 교원지위 회복에 관심가져야"

전임이 아니고 매주 정해진 시간에만 강의를 하고 시간당 일정액의 급료를 받는 사람. 전국 8만 여 명의 전문가 집단. 전국 4년제 대학 강의의 55%를 책임지는 이들의 평균 연봉은 500만원. 4대 보험도, 연구실도 없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시간강사(時間講師)'라고 부른다.

이들은 학교 측에 제시하는 강의개설 신청권과 자료 구입 신청권도 없다. 근로계약서 자체가 없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해고 통지도 없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학생들은 이들을 "교수님"이라고 부르지만 현실 속의 이들은 '비정규직 교수'일 뿐이다. 1990년대 중반,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원도의 힘」은 시간강사의 비애를 적나라하게 그린다. 남자 주인공 상권(백종학 분)은 고급 양주 한 병을 챙겨 들고서 속으로 경멸하는 김 교수를 찾아간다. 박봉의 시간강사에서 벗어나 교수가 되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아부성 로비'를 한 것이다.

현실은 더 가혹하다. 김동애 외 31인의 『비정규 교수, 벼랑 끝 32년: 대한민국 대학 강사들의 생존 현장 이야기』를 보면, 1977년 학원 안정화 조치로 강사의 '교원' 자격이 박탈당한 이래 시간강사는 박봉은 물론이고 '종강 무렵 조교에게 전화를 받으면 다음 학기 강의가 있고, 아니면 없다'고 할 정도로 고용도 불안하고 처우도 심각하다. 생활고에다 인격적으로 무시도 받는다.

교수(전임교원)을 임용하는 것보다 시간강사들을 기용하는 것이 학교 재정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반 기업들이 정규사원을 채용하지 않고 계약직, 임시직, 파트타이머 제도를 쓰는 것과 똑같다.

이런 현실 탓일까.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또 한 명의 시간강사가 목숨을 끊었다. 2003년 5월에는 서울대 러시아어과 백모 강사가 서울대 뒷산에서 목숨을 끊었고, 2006년에는 부산대의 한 시간강사가 74세 노모를 남기고 목을 매 자살했다. 서모 강사는 "한 수도권 사립대에서 교수 임용 대가로 1억원을 요구받았고 지도교수의 논문을 수십 편 대필했다"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6월 정부에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비교해 근무조건과 신분보장, 보수 및 급부 등에 있어서 차별 대우를 받고 있고, 그 차별적 대우는 합리성을 잃은 것이어서 헌법상 기본권인 평등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도 훼손될 우려가 있어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처럼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컸으나 우리사회는 무관심했다. 강사비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부인이 식당일까지 한다고 하니 시간강사들의 처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쯤에서 각 대학의 태권도 관련 학과를 보자. 태권도 관련 2-4년제 학과의 시간강사는 어림잡아 250여 명에 이르고 있다. 태권도 관련 시간강사들은 일반 대학의 강사들보다 생활 형편이 좀 낫다.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오직 교수가 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일반 대학의 강사들과는 달리 태권도장을 운영하거나 직장에 다니면서 '투잡(two job)' 개념 또는 명예직으로 강사를 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태권도 관련 시간강사들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한다. 교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교수의 논문작성을 도와주고 교수가 시키는 잡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동애 씨의 사연을 들어보면 태권도 시간강사들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각 대학의 태권도 관련 학과도 시간강사의 복지후생과 교원지위 회복을 위한 법안 제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인맥과 정실(情實)에 얽매여 함량 미달의 강사를 기용하는 관행도 바로 잡아야 하지만 의사나 변호사 같이 강사들도 전문직으로 인정받아 학문 연구에 정진하고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여건이 조성되길 기대해본다.

[by 서성원의 태권도와 길동무하다 - 퀘변독설]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ㅣ www.taemasis.com]

서성원 기자는 15년차 태권도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태권라인>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