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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의 태권도 세상/태권도人 무술人

[태권도人] 태권도 경기장의 산증인 김경일 관장


4년 넘게 태권도 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람마다 외모가 다르듯 머릿속에 남는 인상
도 제각각이다. 오늘은 태권도 경기장을 무척이나 사랑하던 한 중년의 남성과의 인연, 그의 유별난 태권도 경기장의 사랑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태권도 경기는 공정한 판정을 위해 심판이 있어야 하고, 채점을 기록하는 기록관이 있어야 하고, 질서정연한 경기장 질서를 위해 질서대책요원이 있어야 한다. 그보다도 태권도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경기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분과에 비해 대회 개최 전부터 일이 많다. 참가규모에 따라 경기일정, 코트 수 결정(경기장 매트), 일별 경기수를 정하고 나면 대진표 추첨을 한다. 대회 하루 전에는 남들보다 경기장에 도착해야 한다. 출전선수의 동선과 경기장 구조에 맞게 코트와 전광판을 설치한다. 규모가 큰 대회의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들과 사전에 역할을 분담하고 리허설까지 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다음날 출전할 선수들의 계체를 한다. 대회 시작도 하기 전에 힘 빠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출전 선수 명단을 부른 후 선수를 대기시킨다. 이후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코트를 배정한다. 또한 사전 계획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당일 경기가 마칠 수 있도록 시간 조절도 필수다. 이밖에 대회 시작과 끝을 알리는 개회식과 폐회식, 그리고 시상식도 모두 경기부의 몫이다. 대회가 다 끝나고 선수단, 임원들 모두가 경기장을 빠져나가도 경기부만 남아 매트, 전광판 해체작업을 마쳐야 귀가할 수 있다. 

대회가 치러지는 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경기장 곳곳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렇다 보니 제때 점심식사를 하기란 운이 좋아야 가능하다. 한마디로 태권도대회에 경기부가 없다면, 대회를 개최할 수도 치룰 수 없다. 그렇다고 심판부와 기록부, 절서대책부가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대회기간 외부에 표가 안 나게 고생을 가장 많이 하는 분야가 경기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생을 사서하는 이가 있다. 20여년을 넘게 태권도 경기장에서 경기부 위원으로 세월을 보낸 김경일 관장(자양태권도장)의 이야기다. 김 관장은 태권도 경기운영분야 만큼 국내 몇 안 되는 전문가다. 대회 특성, 참가 규모만으로 대회가 며칠 동안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지 밑그림을 뚝딱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와 인연은 2004년 전남 광양에서 열린 ‘2004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 대회장에서 시작됐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처음으로 대회현장에 취재를 갈 때였다.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 그래선지, 기자 신분으로 경기장을 들어서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때 마침 한 임원이 경기장 본부석 쪽으로 향하는 내게 “무슨 일로 왔냐”고 하기에 “대회 취재 때문에 왔다”고 하자 “안 그래도 엊그제 어떤 개x끼 같은 놈이 기자라고 와서 이상한 글을 썼다”며 내 첫 대회취재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길을 되돌아갈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빨개진 얼굴을 수습하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약간은 긴장되고 흥분된 내게 김경일 위원장이 대진표 한 부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다.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저는 대한태권도협회 경기부 김경일 부위원장 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경기장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대회결과든 뭐든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야기 하세요”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천군만마를 얻는 것만 같았다. 그의 친절한 도움이 있어 첫 대회 취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후 경기장 취재를 갈 때면 가장먼저 그를 찾았다. 몇 해 전부터는 디지털카메라에 맛을 붙여, 경기장 안팎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 여러 사람들에게 전했다. 덕분에 경기장 취재를 못갈 때면 그에게 사진자료를 부탁하곤 했다.

 [2004년 성남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개막식 중간 김경일 관장님과 함께]

김경일 관장은 태권도 경기장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의 애정은 경기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태권도 경기장은 선수들의 불꽃 튀는 경쟁 이면에는 엄숙했다. 한 때는 대회의 주인공이 선수가 아닌 임원이고, 선수들은 임원들에게 재롱을 부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때가 있었다.

그렇게 딱딱하던 경기장 문화를 김경일 관장과 함께한 경기부 위원들은 따뜻한 분위기로 변화를 주도했다. 본래 경기장의 주인공인 선수들을 제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다. 특히 경기가 시작되는 매일 아침마다 선수단에게 격려의 메시지와 음악을 전했다. 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팬서비스였다. 

영화배우 명계남을 매우 많이 닮은 그는 매사를 긍정적이고 밝다. 경기장에서 경기를 앞둔 선수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적당한 농담을 건네며 긴장을 풀어주곤 한다. 특히 제도권 핵심 분야에 감투를 쓰고 있으면서도 목에 힘을 주거나 남을 불편하게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따뜻한 사람이라며 그를 좋아한다.

태권도 경기장을 지키는 일은 남다른 사명감과 애정이 없다면 힘들다. 감투를 쓰기 위해 시작했다면 얼마가지 못한다. 연중 200일이 넘는 객지생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생업을 포기하고 나선 경기장에서는 일당 7만원(2006년까지 5만원)을 받는다. 매년 대한태권도협회와 관련기관들이 승인하고 주최하는 대회와 참가선수가 늘어나면서 대회장 출장일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때로는 자신이 속한 협회가 치른 대회에 문제가 생기면 가감 없이 쓴 소리도 낼 줄 아는 소신 있는 사람이다. 대부분 그 위치에 올라가면 얼마라도 그 자리를 유지하거나, 한 단계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말을 줄이고, 눈치 보느라 바쁘다. 그는 감투에 욕심내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안도 내놓고 한다. 가끔은 재미있는 태권도를 위해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도 개진한다. 그래서일까? 그런 그의 행동이 상부에 눈에 거슬렸던지 올해 경기부 위원 명단에서 그는 제외됐다. 분명한 것은 그가 눈치가 없어 그런 말과 행동을 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분과와 달리 한 가족처럼 서로를 위하던 경기부,]

 다른 분과와 달리 김경일 관장과 함께 경기장에서 동고동락하는 경기부 위원들은 단합도 잘된다. 대회 기간 중에는 일과를 마치고 되도록 같이 식사를 하고, 틈이 나면 대회장 근교 명소에 방문해 동료들과 소중한 추억도 쌓는다. 연말과 신년이면 반드시 자리를 만들어 함께 고생한 위원들을 격려하고 결속을 다진다. 동료 위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는 제작 년쯤 자가용을 승합차로 교체했다. 도장운영에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닌, 동료 위원들과 편하게 대회장을 이동하기 위해서다.  

늘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알던 그는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넷카페 ‘새로운 삶, 인생사랑’(cafe.daum.net/lifeagain)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클럽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작은 정성을 모아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돕고 있다. 해맑은 웃음으로 딱딱한 경기장을 생크림처럼 녹이던 김경일 관장은 오늘도 일상에서 많은 이들에게 그 행복을 전하고 있을 것이다. (끝)

[By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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