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혜진의 태권도 세상/이집트 in 태권도

이집트에서 들려온 우렁찬 기합 소리



집트에는 25년 전 한국인 유학생에 의해 태권도가 처음으로 보급됐다. 지금은 세계 190여 태권도 회원국 중 10위권 내의 우수한 실력을 자랑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탓에 파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집트에서 할 일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도시 대부분이 태권도 불모지인 데다가 태권도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반면 태권도와 유사한 가라테와 쿵후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인기가 많은편이었다. 내가 2008년 KOICA 국제협력요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아스완(Aswan) 역시 마찬가지였다.

50명의 수련생이 400명으로 늘어나기까지

현지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한 내 역할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태권도를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보다 지역 태권도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주민에게 태권도가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었다.

마침 지역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나를 찾아왔다. 아스완은 관광 명소답게 연중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지만 외국인 거주자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 때문에 멀리 떨어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권도’라는 생소한 무술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왔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태권도가 무엇인지, 어떠한 장점을 지닌 스포츠인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소개 했다. 곧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 운영하는 스포츠 클럽과 학교 등을 수시로 방문해 태권도 클럽을 열도록 요청했다. 파견 당시 수련생은 3개 클럽 50여 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현재는 13개 클럽 400여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아스완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축구 같은 인기 종목을 제외한 기타 스포츠 종목은 국가적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태권도 역시 실내 수련 공간이 없어 야외 공터를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한밤중에 어두운 불빛 아래서 수련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유리병 조각에 발이 찢기거나 벌레에 물리는 등 자주 부상을 당했다. 한여름에는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수련생도 있었다. 야외 수련은 집중력이 떨어져서 1시간이면 끝날 과정이 2시간 넘게 걸렸다.

이집트 최초의 ‘꿈의 도장’을 탄생시키다


고민 끝에 KOICA 현장사업으로 태권도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사업임이 분명했다. 준비 기간만 1년 이상 걸렸다. 마침내 KOICA에 정식으로 현장사업을 요청했고, 어렵게 승인을 받아냈다.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누군가 건축 자재를 몰래 훔쳐가는가 하면 계약 위반 문제로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일하던 현장 근로자가 갑자기 잠적하는 등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공사였다.

마침내 지난 4월 28일 이집트 최초로 태권도 훈련장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에는 무려 300여 명이 몰렸다. 작은 도장 개관 행사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윤종곤 주 이집트 대사와 이재웅 KOICA 이집트사무소장을 비롯해 이집트 체육부장관, 주지사 등 여러 관계 기관과 수련생, 학부모 등 수많은 사람이 개관을 축하했다. 행사가 끝난 후에는 현지 수련생과 학부모들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았다. 막연하게 “이곳에 태권도장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현실화된 순간이었다.

 아스완은 이제 이집트의 새로운 태권도 메카로 급부상했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아 속만 태우던 수련생들의 실력은 어느 순간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전에 없던 정부 지원도 확대되었다.

 아쉽게도 내 임기는 끝나간다. 그러나 많은 수련생이 새훈련장에서 태권도를 통해 ‘꿈’과 ‘희망’을 키울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태권도를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하던 아스완 사람들의 눈빛은 나태한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했다. 가르치러 갔지만 배우고 온 것이 더 많다. 인생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가르침을 전해준 이집트의 모든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 글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발행하는 대외 사보 <지구촌 가족> 7월호에 실린 저와 관련된 기고문인 것을 알립니다.

[태권도와 마샬아츠의 오아시스 - 태마시스 ㅣ WWW.TAEMA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