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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건식의 무예보고서/무예보고서

무술과 의학의 만남은 언제 시작되었나?


우선, 계명대학교 송형석(2001)은 한자의 원래적 의미에서 찾아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무술의 무(武)자와 무용의 무(舞), 무당의 무(巫), 그리고 의사의 의(醫)자는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원시사회에서 의료행위(醫術)와 주술행위(巫)는 종종 동일시되었다. 초기 인류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의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무당(巫)의 의식과 동작은 대부분 인간의 건강과 관련이 있었다. 질병과 사망에 직면해서 인류는 한편으로 신령의 보호를 애타게 갈구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질병과 사망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였다. 이로서 주술적 행위(巫)는 의료적 행위(醫術)와 밀접한 관련을 맺기에 이른다. 醫를 고대에는 의(毉)로 썼는데 글자 모양으로부터 巫와 醫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다. 당시 사람의 관념 속에는 질병이란 역귀가 오는 것이며, 巫는 능히 귀신을 쫓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여겼다. 관자의 경언, 여씨춘추, 논어의 자로편을 보면 巫醫가 자주 등장한다. 전통사회에서 무당의 역할을 상기해 보라. 대개 무당은 병든자의 몸에 깃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하늘을 향해 주문을 외우거나 몸을 요란하게 흔든다. 무용은 이와 같은 장단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용의 舞는 無의 약자와 양다리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습에서 형성되었다. 이것은 없는 것을 얻으려고 제자리에서 뛰면서 신전에서 조르는 것을 나타낸다. 이렇게 볼 때 巫堂의 행위는 곧 舞踊으로 나타난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춤이란 신과의 의사소통수단이며, 이를 통해 병이 치유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춤출무(舞)자는 무술의 武자와 발음과 의미가 상통한다. 진시황을 찌르려다 실패한 진무양(秦舞陽)이란 力士의 이름을 秦武陽이라고도 쓰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舞란 글자가 두 발로 제자리에서 뛰면서 없는 것을 빌고 있는 형상에서 유래하였듯이 武란 글자 역시 창을 들고 꿍꿍거리면서 뛰는 모습에서 유래하였다. 이렇게 볼 때 武와 舞는 의미상 매우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양자가 출발 초기부터 관련되어 있었다는 생각은 미개민족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의 연구성과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미개사회를 관찰해 보면 대개 한 부족의 족장은 뛰어난 전사(무인)이자, 정치적 지도자이며, 사제(주술사)였고, 춤꾼이었으며, 의사였다. 따라서 무술, 의술, 종교, 무용간에 일련의 상관관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고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이 서로 연관되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동일인이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 활동을 서로 아무런 연결지음 없이 수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원시사회의 족장 역시 전사로서 싸움행위(무술)와 주술사로서 병을 고치는 의료행위를 의식적으로 서로 연관지어 수행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용인대학교의 양진방교수는,

"처음부터 싸움과는 아무 상관없이 건강을 위한 운동체계의 발전을 위해 일련의 운동양식을 발달시켜 오다, 일정한 시점에 이르러 싸움의 기술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무술과 의료건강체조의 결합시기를 고대로 보고 있지 않다.

Draeger Smith(1980)는,
 
“고대중국의 도인사상과 양생사상은 무술과는 별도로 발달되어 오다가 근대 이후에 비로소 권법에 도입되어 내가 체계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by 허건식의 무예보고서 ㅣ www.woma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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