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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국내에 최초로 가라테가 유입된 시기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 더보기
시장패 건달들이 복싱대회에서 사라진 이유? 해방이후 단성사모습 새단장한 단성사 우리나라에 복싱이 유입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단성사 주인이었던 박승필에 의해 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다. 유술, 씨름, 권투가 모인 이 단체는 최초의 무술단체가 된다. 이 시기는 서양에서도 복싱에 대한 경기규칙이 확정되기 이전이다. 원래 복싱은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종주국인 영국은 1908년 런던올림픽에 밴텀, 페더, 라이트, 헤비급으로 4체급경기를 시범종목으로 채택해 전종목을 우승한바 있다. 4각의 링을 만들고 글러브를 착용한 국내 최초의 복싱은 1925년 1월 30일 YMCA의 실내운동회(일명 서커스대회)에서 첫선을 보인 것이다. 초창기에 이혜택(1906-1965)과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슈버가반하트가 심판을 보며 경기를 치렀.. 더보기
파란만장한 유도중앙도장 이야기 (1) [무예보고서] 중앙도장 공백기 유도계갈등이 원인 중앙도장의 성격으로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은 유도중앙도장인 한국유도원이 있다. 국기원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유도의 경우 중앙도장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도의 핵심시설로 일제시대에 설립돼 해방이후 유도단체들의 많은 갈등이 있었음에도 한국유도원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유도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우리 무도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필자는 한국유도원에 대한 자료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의 신문과 각종 기록들을 토대로 정리해 보았다. 1972년 5월 18일 오후 2시. 여의도 벌판에 한국유도의 메카인 한국유도중앙도장 기공식이 거행됐다. 대지 2200여평,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건편 66..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