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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술

국내에 최초로 가라테가 유입된 시기는? 국내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가라테가 선보인 사료다. 동아일보 1937년 8월 13일자 1면에는 종로에 있던 YMCA(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도장에서 13일 오후 8시반 일본 동경에 소재한 임명관대학(리츠메이칸대학)의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1909-1989)을 초청해 가라테의 대의급(大意及) 실제시범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 야마구치 고겐(山口剛玄)가 시범보인 가라테 유형은 고주류(剛柔流) 가라테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주류는 1860 년대 후반 히가온나 칸조(東恩納寛量)가 오키나와에서 중국 복건성으로 가 남파 소림권에서 14년동안 중국무술을 수행한 후 그것을 오키나와로 전했다고 한다. 히가온나는 오키나와로 전했다 무술은 후에 "那覇手"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수제자였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에게 .. 더보기
중국 무술이 외면받는 이유? 과연 보잘것 없는가? 무술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것은 세계 무술인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이런 중국무술이 국내에서는 그리 인기가 없어 보인다. 긴 역사와 민간무술로 발전해 지금은 전세계 무술계의 가장 많은 수련생을 확보하고 있는 태극권 역시 국내에서는 소수의 수련생들이 집중해서 수련하거나, 건강을 위한 임시 프로그램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왜그럴까? 중국대륙에는 수많은 민간무술들이 존재했고, 그 민간무술은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에 의해 보존되거나 유지되었다. 중일전쟁이후 국민당이 공산당과 내전이후 대만으로 갔다. 일부 유명한 무술인들은 대만으로 가 활동하며 '국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이들은 국내에도 많은 화교들이 인천과 여러 서변(국내에서 서해안주변 지역) 등에 정착하면서 일부인들이기는 하지만 중국무술을 하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