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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역사

파란만장한 유도중앙도장 이야기(2) 새마을비리 전경환배경과 A씨의 유도원 관선체제 1988년 ‘새마을’비리가 연일 터지자 유도계는 긴장을 하게 된다. 5공 당시 새마을 비리의 주인공으로 부각된 전경환은 한국유도의 막후실력자로 군림하면서 유도회는 물론 유도원, 유도학교 등 유도계의 주요 현안에 관여해 왔다. 서울올림픽을 5개월여 앞두고 새마을비리가 불거지자 전 씨 체제 때 소외당했던 원로급 유도인사들은 유도회 집행부를 비롯한 유도원에도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 전경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으로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1980년 9월 대한체육회 이사로 선임되면서 체육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다. 당시 체육계 일부에서는 전경환을 체육회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사전포석이었으며, 한국체육행정을 좌지우지할만한 막강한 인.. 더보기
파란만장한 유도중앙도장 이야기 (1) [무예보고서] 중앙도장 공백기 유도계갈등이 원인 중앙도장의 성격으로 가장 먼저 설립된 것은 유도중앙도장인 한국유도원이 있다. 국기원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유도의 경우 중앙도장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도의 핵심시설로 일제시대에 설립돼 해방이후 유도단체들의 많은 갈등이 있었음에도 한국유도원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유도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우리 무도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필자는 한국유도원에 대한 자료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의 신문과 각종 기록들을 토대로 정리해 보았다. 1972년 5월 18일 오후 2시. 여의도 벌판에 한국유도의 메카인 한국유도중앙도장 기공식이 거행됐다. 대지 2200여평,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건편 66.. 더보기
가노지고로- 왜 유술에서 유도로 전환하는가? 2009/06/18 - [태마뱅크/백과사전] -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생애와 근대유도의 발달 (1) 에 이어 계속. 유술의 시대에는 생명을 걸고 했던 격렬한 승부는, 창조된 안전한 경기 속에서 행하여지고 있으며 기술로부터 도에 들어가는 동양적인 무도관도 현재의 인식속에 살아있다. 술(術)은 기술(技術)을 의미한다. 따라서 술(術)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이다. 술(術)을 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도(道)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심신을 향상시키는 삶의 방법을 의미한다. 비록 유도와 유술의 기술이 닮아쓸지라도 유도의 수련과 훈련의 가장 큰 목적은 유술과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도(道)를 포함하고 있는 여러 단어들이 있.. 더보기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의 생애와 근대유도의 발달 (1) 아래의 글은 《유도론》의 저자 김상철교수님과 필자가 1999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일본유도연구'라는 주제로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에서 정리한 글이다. 이 당시만 해도 근대유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강도관유도와 강도관유도의 창시자 가노지고로에 대한 소개가 국내에서 부족한 시기였다. 당시 정리한 내용을 좀 더 요약한 글이다. 글. 허건식(사단법인 대한무도학회 간사 / 현 서일대학 교수) 가노지고로는 1860년 10월 28일 가노지로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겡 무꼬군 미가게초 하마시가시에서 태어나 어렸을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메이지 3년, 11살이었을 때 고향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가기가라초에서 부친과 함게 살게 되었다. 상경한 지고로는 가까운 요고꾸의 세이다쯔즈꾸에 다니게 되어 우부가타게이또라는 사람에게 .. 더보기